CCTV+ “서원에 울리는 소리의 여운”

(베이징 2022년 11월 10일 PRNewswire=연합뉴스) 바이루둥(백록동)이 우라오펑(오로봉) 옆에 생긴 것은 언제일까? 루샨 우라오펑 남쪽 기슭에는 인생의 영고를 살아남은 황폐한 건물이 흘러간 시대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며 우뚝 서 있다. 바로 이 건물이 고대 중국의 4대 서원 중 으뜸이라 일컬어지는 바이루둥 서원이다. 수천 년 동안 수많은 스승이 이곳에서 학생을 가르쳤고, 수많은 뛰어난 학생이 이곳을 졸업해 서로 다른 길을 향해 나아갔다. 석판에 남은 이름은 수백 년이 흐른 지금에도 여전히 눈부시다. 서기 1216년, 당시 18세의 소년이 바이루둥 서원을 찾아왔다. 소년은 장시성 두창에서 온 강만리(Jiang Wanli)였다. 그는 위대한 학자인 주자를 존경해 이곳에서 공부하기로 마음먹었다. 당시 바이루둥 서원은 이미 위대한 학자와 수천 명의 학생으로 가득했다. 이들은 경학을 공부하고, '인·의·예·지'라는 유교 정신을 가르쳤고, 이는 바이루둥이 중국 최고의 학교로 부상하는 근간이 됐다.

 

서기 1241년, 44세가 된 강만리는 바이루저우(백로주) 서원을 설립하고, 바이루둥 서원 체제를 도입해 모든 학생을 직접 가르쳤다. 1243년에는 종렴정사 서원과 도원서원도 설립했다. 말년에는 자신이 거주하던 라오저우현에 지산서원을 설립했다. 그는 40년 동안 4개의 서원을 설립했다. 그는 교육 경력 내내 '청렴과 의로움'이라는 교육 철학을 일관적으로 설파했다.

장시 서원의 정신은 여전히 심오하고 방대하며, 장시의 문화적 맥락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중국 남북송 시대에는 515개의 서원이 있었는데, 장시에만 170개의 서원이 있었다. 이는 중국 전체 서원 중 3분의 1에 해당했다. 송나라 시대 장시에는 가장 높은 과거 제도 합격생이 5천534명에 달하면서, 중국에서 가장 많은 수를 기록했다. 명나라 시대에는 1천239개의 서원이 있었고, 장시에는 238개의 서원이 있었다. 계절이 빠르게 변했고, 당시에 글을 읽던 큰 소리는 더는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애국심, 청렴한 국민, 지식을 추구하는 학술 정신은 여전히 번성하며, 널리 성장하고 있다.